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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복지센터

중흥2동, 중흥3동 행정동이 통합하여 중흥동이 탄생하였습니다.
주민과 함께하는 언제나 가족같은 북구북구 중흥동
주민과 함께하는 언제나 가족같은 북구,북구 중흥동

연혁

  • 1979. 1. 1 중흥동이 중흥1.2동으로 분동
  • 1982. 9. 1 중흥2.3동으로 분동
  • 2024. 1. 1 중흥2,3동이 중흥동으로 통합

유래

중흥동은 중가리(中街里)와 신흥리(新興里)의 이름에서 비롯됐다. 조선후기에는 광주군 경양면에 속했으며, 1955년부터 중흥동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1957년 풍향·우산동과 함께 효죽동 관할 법정동이 되었고, 1966년 효죽동에서 분동되어 중흥동이 되었으며, 1979년 중흥동이 중흥1, 2동으로 분동 되었다.
1982년 중흥2동이 중흥2, 3동으로 분동되고 2024년 중흥2동과 중흥3동이 다시 합동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지역에는 한복판에 간뎃골, 동편에 모롱골 북녘에는 시냑골, 병문리 마을이 있었다.1625년 인조 때의 왕자 태를 장사 지냈다는 태봉산(52m) 북녘 기슭에 태봉마을이 있었는데 1967년 태봉산을 헐어 경양방죽 매립에 이용했으므로, 지금의 광주역 서편 도로에 있던 태봉산의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다.중흥동은 이웃 우산동 383번지에 조선시대부터 있었던 경양역을 기반으로 형성된 큰 마을이었다.
구한말 일제에 의해 역의 기능이 상실되면서, 광주 외곽의 근교 농촌이었다가 1969년 광주 철도역이 옮겨오면서 역전 시가지가 조성되었다. 지금은 중흥1동과 중흥동이 철길에 의해 갈라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