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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복지센터

주민과 함께하는 언제나 가족같은 북구북구 오치1동
주민과 함께하는 언제나 가족같은 북구, 북구 오치1동

연혁

  • 조선후기 : 광주군 와지면(蛙只面)
  • 1914년 4월 1일 : 광주군 오치면
  • 1935년10월 1일 : 광산군 서방면
  • 1957년12월 2일 : 광주시 서산동
  • 1994년 7월 1일 : 서산동을 서산동과 오치동으로 분동
  • 1997년 3월 1일 : 오치동을 오치1동과 오치2동으로 분동 (우치로를 중심으로 동편이 오치1동이고, 서편이 오치2동이다 )

유래

오치동은 원래 ‘머구재’라 하였는데 한자로 고치면서 오치(梧峙)라 하였다. 이는 오치남쪽에 있는 고개가 머구재 였는데, 이 고개에 머구나무(머귀나구=오동나무)가 있어서 머구재라 한데서 연유된 이름이다. 오치는 새터(신기), 상촌(상오치), 하촌(하오치)으로 나뉘어 불려졌는데 상촌, 하촌은 도시형태로 되었고 새터만이 자연마을 형태가 일부 남아있다.

유물·유적

노씨제각

오치동 5번지, 1913년 노씨제각은 광주노씨 제각祭閣으로 노시조 십부자의 묘소가 실전되어, 서기 1926년에 광주광역시 북구 오치동 능안골 고려평장사高麗平章事 만蔓의 묘역 좌상에 설단하여 삼릉단三陵壇이라 칭하였다. 그리고 매년 음력 3월 15일에 구파자손이 모여 영모재에서 제사를 올리고 있다. 광주자연과학고등학교옆 담을 끼고 삼각산 방향으로 10여분정도 걸어가면 있다.

오산정

오산정 1길, 오치우체국 뒷 이재열씨 가옥내 오산정(梧山亭)은 오산 이용헌(梧山 李龍憲, 1851~1899)의 호를 따서 지은 정자로서, 오산의 아들 송천 이계익(松泉 李啓翼)이 지은 것이다. 오산은 오치의 맑은 산수를 사랑하여 오치의 오(梧)자와 산수의 (山)자를 그의 아호로 자칭하였으며, 이 지역의 한적한 곳을 골라 아담한 정자를 지으려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뜻을 이루지 못한 채 병환으로 세상을 뜨자 그의 아들 송천이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이 정자를 지었다. 원래 이 정자는 1911년 안산에 있었으나 1971년 호남고속도로 공사로 인하여 부득이 오치동 518번지 본가로 이건(移建)하였다가, 1987년에 다시 그 위치를 바꿔 현재의 장소로 옮겨 오늘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