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소개
주민과 함께하는 언제나 가족같은 북구북구 양산동

연혁
- 1932. 11. 1 : 광주군 지산면
- 1957. 12. 2 : 지산출장소 설치(본촌, 우치, 삼소동 명칭사용)
- 1980. 4. 1 : 북구청 개청으로 서구에서 북구 편입
- 1998. 9. 21 : 본촌, 우치, 삼소동 통합으로 건국동 개청
- 2013. 3. 18 : 건국동에서 분동, 양산동 개청(양산동·연제동·일곡동 관할)
유래
양산동
본래 광주군 석제면(石堤面)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양지리 내촌과 갑마보면의 거하리 일부지역을 병합하여 양산리라 해서 본촌(지산)면에 편입되었다가, 1957년 광주시에 편입되어 1998년 9월 21일 건국동의 관할이 되었다. 양산동에는 안들메(내촌)와 그 위쪽 상촌이 있고 으뜸마을인 양지가 있다.
연제동
석제면 지역으로서 들 옆이 되므로 들메, 연못이 있으므로 연제, 연제메 또는 연지메라 하였다.
연제동 연제마을 서편에는 대통골이 있었고 연못 아래에는 못논골이 있었다. 마을 동남쪽에는 개금산(165m)이 있었으며, 으뜸마을인 외촌(밭들메) 동북쪽에는 장구봉, 동남쪽에는 외치골이 있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신촌리, 외촌리의 각 일부와 천곡면의 봉산리 일부, 황계면의 용산리 일부를 병합하여 연제리라 해서 본촌(지산)면에 편입되었다가, 1957년 광주시에 편입되고 동(洞)제 실시에 따라 본촌동회의 관할이 되었다가 1998년 9월 21일 건국동의 관할이 되었다.
연제동 연제마을 서편에는 대통골이 있었고 연못 아래에는 못논골이 있었다. 마을 동남쪽에는 개금산(165m)이 있었으며, 으뜸마을인 외촌(밭들메) 동북쪽에는 장구봉, 동남쪽에는 외치골이 있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신촌리, 외촌리의 각 일부와 천곡면의 봉산리 일부, 황계면의 용산리 일부를 병합하여 연제리라 해서 본촌(지산)면에 편입되었다가, 1957년 광주시에 편입되고 동(洞)제 실시에 따라 본촌동회의 관할이 되었다가 1998년 9월 21일 건국동의 관할이 되었다.
일곡동
일곡동이 지명으로 문헌에 처음 나타난 것은 1789년 <호구총수> 에서이다. 본래는 큰 마을이라 하여 '한실'이라 부르다가 마을 이름을 한자로 바꾸면서 '一曲'이라 했다.
본래 광주군 석제면 지역으로 1792년까지는 一曲(일곡)이라 하였고, 1795년부터는 一谷(일곡)으로 1801년에 日谷(일곡)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一洞(일동)리를 병합하여 日谷(일곡)리라 하고 본촌(芝山)면에 편입되었다. 1957년에 광주시에 편입되었고, 1957년 동제 실시에 따라 본촌동의 관할이 되었다가 1985년 10월 8일 서산동과 본촌동으로 나뉘어 관할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본래 광주군 석제면 지역으로 1792년까지는 一曲(일곡)이라 하였고, 1795년부터는 一谷(일곡)으로 1801년에 日谷(일곡)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一洞(일동)리를 병합하여 日谷(일곡)리라 하고 본촌(芝山)면에 편입되었다. 1957년에 광주시에 편입되었고, 1957년 동제 실시에 따라 본촌동의 관할이 되었다가 1985년 10월 8일 서산동과 본촌동으로 나뉘어 관할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