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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구8경

국립5 ·18민주묘지

  • 국립5 ·18민주묘지 사진1
  • 국립5 ·18민주묘지 사진2

기본정보

  • 주 소 : 광주 북구 민주로 200
호남고속도로를 동광주 톨게이트에서 담양 쪽으로 4.5킬로미터쯤 가다 보면 왼쪽으로 무등산이 바라보이는 아늑한 곳에 터를 잡고 있는 국립5·18민주묘지를 만나 볼 수 있다. 묘역 입구에 들어서면 마치 두 손으로 타원형 물체를 맞잡고 있는 형상의 추모탑이 우뚝 솟아 있어 경건함을 더해준다. 그 곳이 의향이자 민주의 도시, 그리고 민주성지라고 부르는 광주의 대표적인 상징인 국립 5·18민주 묘역이다.

5 만 여평에 조성된 국립5·18민주묘역에 들어서면 먼저 참배객들이 방명록에 서명하고 경건하게 옷깃을 가다듬는 민주의 문이 맞이한다. 민주의 문을 나서면 민주광장과 추념문이 나타난다.

추념문을 지나면 5·18민중항쟁 추모탑이 우뚝 서 있다. 추모탑은 높이 40미터로 두 개의 대칭되는 사각기둥 모습인 탑신과 탑신의 중앙부분 감싸 쥔 손 모양의 내부에 부활을 상징하는 난형의 조형물로 구성되어 있다. 탑신의 골격은 우리나라 전통 석조물인 당간지주 형태를 현대적 감각에 맞게 형상화한 것이다.

추모탑 양 옆에는 청동조각품, 묘역 아래에는 옆으로 길게 청동부조가 설치되어 있다. 청동조각품은 80년 5월 불법과 불의에 저항해 총을 들고 항쟁에 나섰던 시민군을 형상화한 '무장항쟁군상' 과 슬픔을 딛고 승리를 노래하며, 질서와 치안유지를 위해 노력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묘사한 '대동세상군상'이다. 탑을 중심으로 좌우 17.5m씩 수평 구조로 설치된 청동부조의 제목은 '5월 민중항쟁도'이다. 추모탑 너머에 민주열사들이 안장되어 있는 묘역이 펼쳐진다. 묘역은 총3,000평으로 784기를 수용할 수 있다. 1묘역과 2묘역 일부(묘지번호 1-1부터 2-66번까지)는 80년 당시 사망자. 2묘역(2-67부터)3,4묘역은 80년 당시 부상 후 사망자가 안장되어 있다. 묘역 중 제10묘역은 행방 불명자들의 묘역으로 사용되고 있다.

묘역의 우측에는 묘역에 안장된 분들의 영정을 모신 유영봉안소가 있다. 유영봉안소의 외부 모형은 우리나라 전통고분인 고인돌 형태를 응용하였다. 묘역의 좌측에는 참배를 마친 방문객들을 역사체험 공간으로 안내하는 역사의 문이 있다. 역사의 문 지하에는 80년 당시 현장에서 촬영한 사진 122점을 전시하고 있으며, 또한 당시 상황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한 영상기록물이 상영되고 있다. 역사의 문 아래에는 아담한 야외공연장이 있고 그 너머에 부조로 형상화된 역사마당이 설치되어 있다. 역사마당은 의병운동, 동학농민전쟁, 3·1운동, 광주학생독립운동, 4·19혁명, 5·18민주화운동과 민족의 염원인 통일까지 7개의 테마를 부조로 형상화하였다. 역사마당을 지나면 전시공간과 5∙18영상을 상영 할 수 있는 기능을 고려한 복층 건물로 지어진 승모루가 있다.

1980년 5·18민중항쟁이 발발한 후 1997년 국립5∙18민주묘역이 설치되기까지는 사연이 많이 있다. 그 때까지는 5∙18민중항쟁의 정당성과 명예가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국민의 민주화 요구가 수용되고 1988년 개최된 '광주청문회'를 계기로 5월 항쟁의 실상이 공개되었다. 1993년 문민정부가 등장하여 '역사 바로 세우기'일환으로 묘역조성을 발표하고, 1994년 11월 묘역조성 공사가 시작되어 1997년 5월 13일 완공되었다. 그 후 2002년 1월 '광주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이 공포되어 2002년 국립묘지로 승격되었다가 2006년 1월 '국립5·18민주묘역'으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현재 시청에 등록된 5월 항쟁 관련자는 5천명을 넘어서고 있다. 묘역의 안장능력은 794기, 2008년 현재 500여기가 안장되어 있다. 1980년 5월,10일간의 처참한 항쟁이 끝나고 산화한 120여 열사들이 주검으로 광목천과 비닐에 둘둘 말린 채 청소차와 손수레에 실려서 망월동 시립묘지에 묻혔었다. 이후 1994년부터 묘지성역화 사업을 추진하여 1997년 새로운 국립5·18민주묘역이 완성되자 새로운 묘역으로 이장되었다.

국립5·18민주묘역은 5월 항쟁의 정수이자 상징적인 기념비이다. 그래서 오늘도 이 땅에 다시는 불의와 독재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하는 준엄한 역사교육의 장으로서 활용되고 있다.

또한 자유와 민주 그리고 정의를 갈망하는 세계인의 가슴속에 민주화의 성지로 굳게 자리 잡아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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