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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구소개

북구연혁

현재의 북구

1966년 1월 8일(시조례 제210호)에 의거 충효동을 분동하였으며, 1970년 6월 29일(시조례 제348호)에 의하여 누문동과 우산동을 분동하고, 1973년 7월 1일 區制 실시에 따라 동구와 서구로 분할 (1973. 3. 12. 대통령령 제6544호)되면서 우리 북구지역은 석곡출장소와 지산출장소가 24개동을 관할(1973. 6. 12. 시조례 제540호)하게 되었으며, 1979년 1월 1일 중흥동을 중흥1동과 중흥2동으로 분동(시조례 제844호) 같은해 5월 1일 풍향동이 풍향1동과 풍향2동으로 분동(1979. 2. 7. 시조례 제866호)되고, 같은해 9월 26일 공포한「대통령령 제9630호」로 동구지역의 중흥동(같은해 1월 1일 중흥 1, 2동으로 분동), 석곡출장소 관할지역인 우산동, 풍향동(같은해 5월 1일 풍향1, 2동으로 분동), 문화동, 서산동, 충효동, 청옥동, 장운동과 서구지역의 유동, 누문동, 북동, 임동, 태봉동, 동운동 그리고 지산출장소 관할지역인 본촌동, 우치동, 삼소동(이상 19개동)을 관할지역으로한 광주시 북구(行政區)를 설치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년대별 북구연혁을 날짜와 상세내용과 함께 제공합니다.
2010년대 13년 03월 18일
  • 건국동 → 건국동, 양산동으로 분동
11년 10월 01일
  • 구간 경계조정
  • 중흥동 일부 → 동구 계림동 편입
  • 우산동 일부 → 동구 계림동 편입
  • 풍향동 일부 → 동구 계림동 편입
  • 두암동 일부 → 동구 산수동 편입
  • 운암동 일부 → 서구 동천동 편입
  • 동림동 일부 → 서구 동천동 편입
  • 동구 산수동 일부 → 풍향동 편입
  • 서구 광천동 일부 → 임동 편입
11년 08월 03일
  • 법정동간 경계조정 - 연제동 일부 → 신용동 편입
2000년대 09년 08월 04일
  • 법정동간 경계조정 - 동림동 일부 → 운암3동 편입
06년 02월 10일
  • 법정동간 경계조정 - 동림동 일부 → 운암1동 편입
05년 02월 18일
  • 법정동간 경계조정 - 매곡동 일부 → 용봉동 편입
04년 01월 10일
  • 구간 경계조정
  • 서구 광천동 일부 → 운암동 편입
  • 서구 유촌동 일부 → 동림동 편입
  • 서구 쌍촌동 일부 → 동림동 편입
  • 동림동 일부 → 광산구 신창동 편입
03년 11월 25일
  • 법정동간 경계조정 - 양산동 일부 → 연제동 편입
03년 07월 07일
  • 서산동 → 삼각동, 일곡동으로 분동
1990년대 98년 09월 21일
  • 충효동, 청옥동, 장운동 → 석곡동
  • 본촌동, 우치동, 삼소동 → 건국동
97년 03월 01일
  • 유동, 누문동, 북동 → 중앙동
  • 풍향1동, 풍향2동 → 풍향동
  • 동운3동 → 운암3동, 동림동
  • 서산동 → 서산동, 매곡동
  • 오치동 → 오치1동, 오치2동
  • 동운1동 → 운암1동
  • 동운2동 → 운암2동
96년 01월 09일
  • 문흥동을 문흥1·2동으로 분동
95년 03월 01일
  • 문화동을 문화동과 문흥동으로 분동
  • 두암1동을 두암1·3동으로 분동
95년 01월 01일
  • 광주직할시 → 광주광역시로 명칭 변경
    (법률 제4,789호 1994. 12. 공포)
93년 12월 01일
  • 동운1동 → 동운1·3동으로 분동
91년 04월 15일
  • 북구의회 개원(의회사무국 신설)
1980년대 89년 05월 15일
  • 두암동을 두암1·2동으로 분동
88년 05월 01일
  • 북구가 자치구로 개청 (2국 2실 13과 1사업소 23동)
86년 11월 01일
  • 광주시가 직할시로 승격되어 전라남도에서 분리
    (1986년 5월 8일,법률 제3808호)
85년 11월 01일
  • 문화동을 문화동과 두암동으로 분동
85년 09월 23일
  • 북구청사 이전(용봉동 239-2번지)
83년 10월 01일
  • 태봉동을 신안동과 용봉동으로 분동
83년 02월 15일
  • 장성군 남면 삼태리 일부를 북구 오룡동으로 편입
    (대통령령 제 11027호)
83년 01월 04일
  • 북구청사 이전(북구 운암동 94-7번지)
82년 09월 01일
  • 중흥2동을 중흥2·3동으로 분동
  • 동운동을 동운1·2동으로 분동 (시조례 제1147호)
80년 04월 01일
  • 북구청 개청(북구 중흥동 701-10번지)
    10課, 33係, 19洞
    - 동구지역이었던 중흥1동, 중흥2동, 석곡출장소
    (우산동, 풍향1동, 풍향2동, 문화동, 서산동, 충효동, 청옥동, 장운동)
    지산출장소(본촌동, 우치동, 삼소동)와 서구지역이었던
    유동, 누문동, 북동, 임동, 동운동, 태봉동
    석곡, 지산출장소 폐지 (시조례 제944호)
1970년대 79년 09월 26일
  • 북구설치 공포(대통령령 제9630호)
79년 05월 01일
  • 풍향동을 풍향1동과 2동으로 분동 (시조례 제866호)
79년 01월 01일
  • 중흥동을 중흥 1동과 중흥2동으로 분동
    (시조례 제844호)
73년 07월 01일
  • 구제 실시에 따라 북구지역이 동구와 서구로 분할
    (1973년 3월 12일, 대통령령 제6544호)
70년 06월 29일
  • 효죽동을 우산동으로 개칭 (시조례 제348호)
70년 01월 01일
  • 효죽동에서 풍향동 분동
1960년대 66년 01월 08일
  • 효죽동에서 중흥동 분동 (시조례 제210호)
61년 03월 10일
  • 석곡출장소와 효죽·문화·서산동을 포함하여 북부출장소 설치
1950년대 57년 12월 02일
  • 북구지역에 석곡출장소(충효·청옥·장운동)와 지산출장소
    (우치·본촌·삼소) 설치
57년 11월 06일
  • 석곡면 일부와 담양면 남면의 충의·충효·금곡리가 광주시에 편입
    (1957년 11월 6일, 법률 제454호)
55년 07월 01일
  • 서방면 전역과 극락면의 운암·동림리, 석곡면의
    화암·청풍리, 망월면의 장등·운정리가 광주시에 편입
    (1955년 6월 29일, 법률 제361호)
1940년대 49년 08월 15일
  • 지방자치제 실시에 따라 광주부를 광주시로 개칭
    (1949년 7월 4일, 법률 제32호)
47년 08월 15일
  • 정을 동으로 개칭(도령 제7호)
46년 04월 05일
  • 41정을 47정으로 고침 (광주민보 1946년 3월 13일자)

8·15 광복이후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되고 1947년 8월 15일 "정"이라는 명칭을 "동"으로 개칭하여 유정, 누문정, 북정, 임정을 유동, 누문동, 북동, 임동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1949년 8월 15일 지방자치제 실시에 따라 광주부를 광주시라 개칭하고(1949. 7. 4. 법률 제32호), 1955년 7월 1일 행정구역 변경으로 석곡면의 일부인 화암리, 청풍리, 망월면의 장등리, 운정리, 극락면의 운암리, 동림리가 광주시에 편입되었고(1955. 6. 29. 법률 제361호), 1957년 담양군 남면 충의리, 충효리, 금곡리가 편입되었으며(1957. 11. 6. 법률 제454호), 1961년 3월 10일 석곡출장소와 효죽동, 문화동, 서산동을 포함하여 8개 출장소의 하나인 북부 출장소가 설치되었다.

일제 강점기시대

1913년 12월 29일 반포된 조선 총독부령 제111호로 12개면이었던 북구지역은 석곡면, 중치면, 본촌면, 서방면, 극락면 일부등으로 통·폐합되었으며 1935년 10월 1일에 광주읍에서 광주부로 승격되었다.

조선시대

1392년 이성계가 조선을 창건하면서 광주는 무진군, 광주목, 광산현, 광주로 여러차례 강등과 승격을 반복하면서 변하였는데 북구에 속하는 지명으로는 상대곡면(청옥동), 석보면(충효동), 황계면(신용동), 천곡면(서산동), 기례방면(북동), 보면(문화동), 석제면(효죽동), 삼소지면(문화, 장운동), 우치면(우치동), 하대곡면(청옥동 북부), 경양면(효죽, 풍향동) 등이고 호수는 2,461호였다.

고려시대

북구를 포함한 무주지역민들이 후백제 잔여세력으로서 저항이 계속되던 918년 왕건이 고려를 세우고 940년에는 무주를 광주라고 명명하였으며 목은 이색은 석굴정기에 光之州라고 하여 빛의 고을로 해석하고 있다.성종2년(983년)에 12목을 설치하면서 고려에 협력하였던 나주와 승주에는 목이 설치되고 절도사가 파견되었지만 광주에는 하위신분인 척사가 파견된 것으로 미루어보아 후백제와 연결, 고려 왕건에 끝까지 저항하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삼국시대

북구는 삼국시대 마한의 영역이었으나 그 후 삼국의 정립시대에 접어들면서 근초고왕 24년(서기 369년)에 백제에 복속되었다.그 실증적 자료로 6세기 사비 천도후 백제 전통 묘제인 석실묘가 각화동, 청옥동 등에서 발견되고, 탐라가 조공을 거부하자 동서왕이 친정에 나서 武珍州까지 내려왔다는 기록과 武珍州로 명명등은 이 지역이 백제의 지배권에 속하였다는 것을 추정하게 한다. 통일신라시대 북구는 9주의 하나인 무주로 행정, 군사상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후백제 시대에 광주 북촌(북구)인과 혼인한 견훤이 무등산 고개에 무진 고성을 쌓아 독자 세력을 형성하자(삼국유사 편) 고려 태조가 이를 징벌하기 위해 진을 쳤던 왕조대(삼소동 왕소지), 견훤대(생룡동 죽익봉), 극락강 주변 등이 여지도서(1759년)에 전해지고 있다.

선사시대

광주광역시 북구의 역사가 언제부터 시작하였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고고학적인 자료를 통해서 어느정도 추측이 가능하다. 문헌상으로 마한에 속하였다는 기록보다 앞선 선사시대의 유적이나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어 선사시대부터 북구지역에도 사람들이 살았음을 증명해 주고 있다. 북구지역에서 발견된 선사시대 유적은 청동기시대에 속한 것이 오래된 것으로 운암동 어린이 대공원 내에서 발견된 유물이나 충효동, 청옥동 등지에서 보이는 지석묘 등을 들 수 있다. 역사적 기록이 없던 시대인 선사시대의 북구는 무등산을 무대로 수렵, 극락강변에서의 어로와 평야지대에서의 농경 등 옛부터 사람이 살기좋은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선사인들에게는 적합한 활동무대가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구석기나 신석기 시대의 유물들도 발견되리라 믿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