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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하러 가요 북구의 자연과 어울려 체험할 수 있는 곳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북구를 자랑해봐요!

문화유적

  •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 (光陽 中興山城 雙獅子 石燈)사진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 (光陽 中興山城 雙獅子 石燈) 석등은 부처의 광명을 상징한다 하여 광명등(光明燈) 이라고도 하며, 대개 대웅전이나 탑과 같은 중요한 건축물 앞에 자리한다. 일반적으로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로는 3단을 이루는 받침돌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을 올린 후 꼭대기에 머리장식을 얹어 마무리한다. 이 석등은 큼직한 연꽃이 둘러진 아래받침돌 위로 가운데기둥 대신 쌍사자를 조각한 것이 특징이다. 두 마리의 사자는 뒷발로 버티고 서서 가슴을 맞대어 위를 받치고 있는 모습으로, 사실적이면서 자연스럽게 표현되어 있어 주목된다. 8각의 화사석에는 4개의 창이 뚫려 있고, 지붕돌은 여덟 귀퉁이에서의 치켜올림이 아름답게 표현되었다. 장식이 번잡하지 않아 간결하면서도 사실적인 수법이 돋보이는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그다지 크지 않으면서도 뛰어난 조각기법과 아름다운 조형미를 보여주는 걸작이라 하겠다. 원래는 중흥산성내에 있었으나, 일본인이 무단으로 반출하려 하여 경복궁으로 옮겨 놓았다가 지금은 국립광주박물관에 전시하고 있다. 자세히보기
  • 정지장군 갑옷 (鄭地將軍 甲衣)사진 정지장군 갑옷 (鄭地將軍 甲衣) 갑옷이란 싸움터에서 적의 화살이나 창, 검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하여 입었던 보호 장비로, 이 갑옷은 철판과 철제 고리를 엮어 만든 경번갑이다. 정지장군 갑옷(鄭地將軍 甲衣)의 주인인 정지장군은 고려 충목왕 3년(1347)에 태어나, 왜구를 물리치는데 큰공을 세웠으며 공양왕 3년(1391)에 세상을 떠났다. 이 갑옷은 장군이 왜구를 물리칠때 직접 착용했던 것으로 후손에 의해 전해진 것이다. 총 길이 70㎝, 가슴둘레 79㎝, 소매길이 30㎝로 세로 7.5∼8㎝, 가로 5∼8.5㎝의 철판에 구멍을 뚫어 철제 고리로 연결하여 제작하였다. 앞면에는 철판 6조각을 한 줄로 연결한 것이 6줄이 있는데, 그 중 두 줄은 여미게 되어 있다. 뒷면은 7조각을 한 줄로 연결한 5줄로 등을 가릴 수 있도록 하였다. 어깨 팔은 철판없이 고리만을 사용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하였다. 앞면 아래쪽에 약간의 손상이 있지만 비교적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특이한 갑옷으로 매우 귀중한 문화재라 할 수 있다. 자세히보기
  • 광주 충효동 왕버들 군 (光州 忠孝洞 왕버들 群)사진 광주 충효동 왕버들 군 (光州 忠孝洞 왕버들 群) 광주 충효동 왕버들 군은 충효마을의 상징숲이자 비보(裨補)숲으로 조성되었으며, 김덕령 나무라고도 불리우는 등 나무와 관련된 유래나 일화들이 잘 전해지고 있어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크다. 또한 수령이나 규모면에서 현재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되고 있는 왕버들과 비교했을 때 우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수형 및 수세 또한 양호한 편으로 생물학적 가치도 크다. 자세히보기
  • 광주 환벽당 일원 (光州 環碧堂 一圓)사진 광주 환벽당 일원 (光州 環碧堂 一圓) 환벽당은 사촌 김윤제(沙村金允悌, 1501~1572)가 노년에 자연을 벗 삼아 후학양성을 목적으로 건립한 남도지방의 전형적인 유실형(有室形)정자로 가까이에는 무등산 원효계곡의 계류가 흐르며 계곡아래 증암천(甑巖川) 주변에는 배롱나무가 아름다운 장관을 이뤄 자미탄(紫薇灘)이라 불렀으며, 특히 이곳은 무등산을 비롯한 원효계곡의 줄기를 따라 자연 풍광이 수려한 지역으로 예로부터 시인묵객들이 자주 드나드는 명승지였다. 환벽당 북쪽으로 200미터 떨어진 곳에는 사촌 김윤제가 살았던 충효마을과 증암천 너머에는 송강 정철이 살았던 지실마을이 있으며 환벽당 아래에는 송강과 사촌이 처음 만난 곳이라는 전설이 깃든 조대(釣臺)와 용소(龍沼), 쌍송(雙松)이 있어 역사적 가치가 뛰어난 곳이다. 면앙정 송순은 서하당 김성원이 식영정을 건립하고 3년이 지난 뒤 1563년 식영정의 시를 차운하며 ‘식영정과 환벽당’은 형제의 정자라고 하면서, 소쇄원과 식영정, 환벽당을 가리켜 한 동(증암천)안에 세 명승 즉, 一洞之三勝이라 말한다. 환벽당은 환벽(環璧)이란 뜻 그대로 푸르름이 고리를 두르듯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이루고, 시가문학과 관련된 국문학사적인 인문학적 가치가 매우 큰 곳이며, 별서원림으로서 가치가 우수한 호남의 대표적인 누정문화를 보여주는 곳이다. 환벽당이 위치한 곳은 무등산 북능의 능선으로 북봉을 거쳐 꼬막재로 이어지는 여러가지 지맥 중의 하나이며, 사촌 김윤제(1501-1572)가 태어난 충효마을 남쪽 200m지점에 있다. 또한 광주와 담양을 경계로 흐르는 증암천(별칭 : 자미탄)을 사이에 두고 남쪽 무등산에서 북쪽 성산에 이르기까지 산들이 고르게 파노라마 경관을 보여주는 선경을 이루고 있다. 환벽당 주변에는 사촌 김윤제가 살았던 충효마을과 송강 정철이 살았던 지실마을, 소쇄공 양산보가 살았던 창암촌이 있으며, 이 마을들 주변으로 식영정(息影亭)과 면앙정(俛x仰亭), 송강정(松江亭), 은거를 위한 독수정(獨守亭)과 소쇄원(瀟灑園), 환벽당(環碧堂) 등 10여개 정자가 소재해 있어 이 일대가 조선시대 원림 문화의 중심지역으로서 가치가 뛰어나다. 환벽당은 당대 최고의 석학들인 송순, 임억령, 양산보, 김인후, 김성원, 기대승, 고경명 등이 드나들던 곳으로 수려한 자연경관을 감상하고 시문과 가사를 지으며 풍류 문화의 극치를 이룬 조선시대 사림문화의 중심으로서 역사 문화적 가치가 뛰어나다. 환벽당의 초기모습은 소세양(1486~1562)이 지은 “환벽당“시를 통해서 알 수 있으며, 삼연 김창흡(三淵金昌翕 1653~1722)의 『南遊日記』를 통해 그 당시의 원림의 식물상과 조경수종을 짐작할 수 있고, 김성원((1525~1597)의 “서하당유고“ 에 ”성산계류탁열도”등의 그림이 남아있어 인문적 가치가 있다. 환벽당 관련 시·문은 당대의 일류 문인들로서 임억령, 기대승, 송순, 김인후, 소세양, 정철, 백광훈, 고경명, 권필도, 정홍명, 목장흠, 이은상, 이하곤, 이명한, 김창흡, 조상건, 양경지, 정민하, 서봉령 등 시인묵객의 시가가 전해져 인문학적 가치가 있다. 자세히보기
  • 풍암정 (楓岩亭)사진 풍암정 (楓岩亭) 풍암정은 조선 선조와 인조 때 활동하였던 풍암 김덕보(1571∼?)가 지은 정자로 ‘풍암’이라는 이름은 그의 호를 따서 붙인 것이다. 김덕보는 임진왜란 때에 큰형 덕홍이 금산싸움에서 죽고 의병장으로 크게 활약하던 작은형 덕령까지 억울하게 죽자, 이를 슬퍼하여 무등산 원효계곡을 찾아와 학문을 연구하며 평생을 살았다. 후에 의열사에 신주를 모셨다. 풍암정은 앞면 2칸·옆면 2칸 규모로 이루어져 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고 ‘풍암정사’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다. 자세히보기

북구 8경

특산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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