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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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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화동이미지
    각화동 본래 광주군(光州郡) 두방면 지역으로서 삼각산(三角山)아래 동네라서 각화(角化)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오치면(傲侈面)의 문산리(文山里)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각화리(角化里)라 해서 서방면(瑞坊面)에 편입되었다가 1955년 7월 1일 광주시에 편입되어 리(里)를 동(洞)으로 고치고, 1957년 동(洞)제 실시에 따라 각화동이라 하고, 1986년에 문흥동과 함께 행정구역상 문화동의 관할이 되었다.
  • 금곡동이미지
    금곡동 본래 광주군(光州郡) 석저면(石底面) 지역으로 주검동(鑄劒洞) 유적에서 쇠가 났다하여 서름, 금곡(金谷), 서림(西林, 書林), 서촌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원촌리(元村里), 신촌리(新村里), 이치리(梨峙里)와 상대곡면(上大谷面)에 편입되었다가 1955년 7월 1일 담양군 남면에 편입되었고 1957년 11월 6일 광주시에 편입되어 리(里)를 동(洞)으로 고치고 그해 12월 2일 충효동의 관할이 되었다. 그리고 1998년 9월 21일자로 석곡동에 통폐합되었다. 한적한 산골이던
  • 누문동이미지
    누문동 광주읍성의 북문 밖에 있었던 공북루(拱北樓)의 이름을 따서 누문(樓門)이라 했다. 조선 후기 이 지역은 광주군 기례방면에 속했는데 1946년 누문정(町)을 누문동(洞)으로 바꿨다. 1952년 28개 운영동으로 폐합할 때 충장로 5가 동회와 누문동회를 합해 충순동이라 했고 1957년 광산군 편입으로 1백 22개 동을 51개 동으로 줄일 때 본청 직할의 누문동이 되었다. 1986년 광주직할시 북구 누문동이 되었고 1997년 3월 1일자로 유동, 북동과 함께 중앙동이 되었다. 누문동은 읍성의 북문
  • 대촌동이미지
    대촌동 대촌동(大村洞)은 250가구수에 상대, 중대, 하대마을로 이루어졌으며 500여 년 전에 청풍 임씨가 들어와 성촌되었다고 하며 그 후에 김해 김씨, 광산 김씨, 청주 한씨, 밀양 박씨가 이거해 와서 큰 마을로 변모 발전되었으나, 광주광역시에 인근한 지역이라 현재는 김해 김씨 60여 호, 광산 김씨 15호, 청주 한씨 12호, 밀양 박씨 10여 호, 청풍 임씨가 5호이며, 기타 타 성씨의 집성촌으로 생활하고 있다. 6.25이후 토착민은 35%, 농경지는 15~20%만이 본래 마을의 인구형성과 토지소유
  • 덕의동이미지
    덕의동 본래 광주군 석저면 지역으로 덕봉산 밑에 위치하고, 의병장 김덕령이 태어난 곳이므로 덕의(德義)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본촌리를 병합하여 덕의리(德義里)라 해서 석곡면(石谷面)에 편입되었는데, 1955년 담양군 남면에 편입되었다가 1957년 11월 6일 광주시에 편입되어 충효동 관할이 되었고 1998년 9월 21일자로 석곡동 관할이 되었다.
  • 동림동이미지
    동림동 운암산(131m) 자락에 안겨있는 동림동은 동배(東背)와 죽림(竹林)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조선후기 이 지역은 광주군 황계면에 속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동배리(東背里), 죽림리(竹林里), 용산리(龍山里)의 각 일부와 군분면(軍盆面)의 쌍촌리(雙村里) 일부, 덕산면(德山面)의 동작리(東作里) 일부 그리고 석제면(石堤面)의 외촌리(外村里) 일부를 병합하여 동림리라 해서 극락면에 편입되었다가, 1955년 7월 1일 광주시에 편입되어 리(里)를 동(洞)으로 고치고 동운동의 관할이 되었다
  • 두암동이미지
    두암동 본래 광주군 두방면(斗坊面) 지역으로서 길가에 있는 말머리처럼 생긴 큰바위인 말바우를 한자지명으로 풀어 두암(斗岩)이라 했다. 두암동은 풍수지리상 명당으로 소문이 났다. 장원봉에서 달려온 용이 군왕봉(365m)에 이르러 좌우로 뻗쳐 좌청룡 우백호가 되고, 우산동의 소산·무냉이등· 범덕등이 북서쪽 벌판에서 부는 찬기를 막아주는 안산(案山)이 된다. 여기에 솔샘(松泉)이 수구혈(水口穴)이 되어 옛부터 세 정승이 나온다 하여 삼정골이란 땅이름도 있다. 불당골에서 발견된 토기굽는 터는 이곳이 매우
  • 망월동이미지
    망월동 토끼가 달을 바라보는 형국, 즉 옥토망월(玉?望月)형국이라 해서 망월동이라 했다. 본래 광주군 상대곡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분토리와 하대곡면의 복정리 일부와 창평군 서면의 죽곡, 죽월산리 일부를 옥토망월형의 명당이 있다 하여 망월리라 해서 석곡면에 편입되었다. 1955년 7월 1일 광주시에 편입되어 리(里)를 동(洞)으로 고치고, 1957년 동제 실시에 따라 청옥동회의 관할이 되었으나, 1998년 9월 21일 석곡동 관할이 되었다. 망월동은 무등산 자락에서 북쪽으로 흐르
  • 매곡동이미지
    매곡동 매곡동은 어매(於梅)와 봉곡(鳳谷)의 이름을 따서 지은 이름이다. 어매마을 뒷동산은 매화가 땅에 떨어지는 형국과 같다고 ‘매화낙짓등’이라 부른다. 조선후기 이 지역은 광주군 와지면(蛙只面)에 속했다가 서방면에 편입되었고 1955년에는 광주시에 편입되었고 1957년 동(洞)제 실시에 따라 리(里)를 동(洞)으로 고치고, 복스럽고 길한 징조가 있는 산에 안겨있다고 해서 매곡, 오치, 삼각동을 합해 서산동이라 하였다. 오동나무가 울창한 고개 너머 한적한 근교농촌이던 곳에 1979년 전남공무원교육원이
  • 문흥동이미지
    문흥동 본래 광주군(光州郡) 오치면(梧峙面)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송정리(松亭里)와 문산리(文山里), 용주리(龍珠里)의 각 일부와 서양면(瑞陽面)의 신흥리(新興里) 일부, 두방면(斗坊面)의 각화리(角化里) 일부지역을 병합하여, 문산(文山)과 신흥(新興)의 이름을 따서 문흥리(文興里)라 해서 서방면(瑞坊面)에 편입되었다가, 1955년 7월 1일 광주시에 편입되고, 1957년 동제 실시에 따라 리(里)를 동(洞)으로 고치고 문화동의 관할이 되었다가 1995년 3월 1일 문흥동으로 분동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