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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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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풍암정 (楓岩亭)이미지
    풍암정 (楓岩亭) 풍암정은 조선 선조와 인조 때 활동하였던 풍암 김덕보(1571∼?)가 지은 정자로 ‘풍암’이라는 이름은 그의 호를 따서 붙인 것이다. 김덕보는 임진왜란 때에 큰형 덕홍이 금산싸움에서 죽고 의병장으로 크게 활약하던 작은형 덕령까지 억울하게 죽자, 이를 슬퍼하여 무등산 원효계곡을 찾아와 학문을 연구하며 평생을 살았다. 후에 의열사에 신주를 모셨다. 풍암정은 앞면 2칸·옆면 2칸 규모로 이루어져 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고 ‘풍암정사’라고 쓴 현판 바로가기
  • 김봉선유품 (金鳳善遺品)이미지
    김봉선유품 (金鳳善遺品) 대한제국 때 활약했던 김봉선(1856∼1909)이 남긴 문서와 국가의 중대한 의식이 있을 때 입던 대례복을 비롯한 여러 유물들이다. 김봉선은 전라북도 남원 출신으로 을사보호조약 이후 고종의 밀명을 수행하였다. 을사보호조약으로 실추된 국권회복 방안의 연구와 이와 관련된 정보수집, 헤이그 만국평화회에 보낼 밀사의 추천과 파견에 대한 일을 하였다. 문서에는 고품서와 고종의 밀명이 담긴 편지·칙명·이력서·증서를 비롯하여 48점이 있으며, 보존상태는 양호하다. 대례복은 하의가 없어져 상의와 허리 바로가기
  • 분청사기전라도명항아리이미지
    분청사기전라도명항아리 분청사기란 회색 또는 회흑색의 바탕 흙 위에 정선된 백토로 표면을 분장한 뒤에 유약을 씌워 구운 조선 전기의 도자기이다. 높이 43.4㎝, 아가리 지름 16.0㎝로, 조선시대 즐겨 만들었던 분청사기 항아리의 대표적인 형태이다. 밖으로 살짝 벌어진 아가리 가장자리와 곧고 짧은 목 언저리를 가졌으며, 어깨가 팽창되고 몸체가 긴 편이다. 특히 몸체에 새겨진 ‘全ㅅ道’라는 글로 미루어, 충효동 가마가 있는 전라도 지방이 조화·박지 분청사기의 산지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로가기
  • 광주 대원정사 석조보살좌상이미지
    광주 대원정사 석조보살좌상 향적전에 봉안되어 있는 이 석조여래좌상은 높이가 38.5cm로 소형이다. 제작 시기는 상호나 자세, 착의법, 보발, 바당 생 옷칠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조선 후기에 제작된 보살상이다. 양식적으로는 17세기 후반에 활발하게 활동한 색난(色難) 유파의 여러 조각상과 친연성이 느껴지기도 해서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이 보살상은 상체가 조금 앞으로 숙인 자세를 취하고, 얼굴과 신체의 비례가 비교적 균형감을 보인다. 보관은 간략화된 모습이며 상단 부분이 바로가기
  • 취가정 (醉歌亭)이미지
    취가정 (醉歌亭) 충효마을 동쪽 북촌마을에 위치해 있으며, 환벽당과는 200m쯤 떨어져 있다. 이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골기와 팔작지붕으로 중앙의 거실 한 칸을 제외한 좌․우양 칸은 모두 마루로 꾸며져 있다. 취가정. 권필의 취시가 원문. 취가정은 임진왜란 때 조선의병의 총수였던 충장공(忠壯公) 김덕령(金德齡)의 유덕(遺德)을 기리기 위해서 그의 후손인 난실(蘭室) 김만식(金晩植)과 여러 문족(門族)들의 협력에 의해 1890년(고종 27)에 최초 창건하여 보존해 오다가 1950년 한국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