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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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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지장군예장석묘 (鄭地將軍禮葬石墓)이미지
    정지장군예장석묘 (鄭地將軍禮葬石墓) 고려 후기의 무신인 경렬공 정지(1347∼1391) 장군의 묘소이다. 공민왕 14년(1365)에 사마시에 장원급제하고 이듬해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공민왕 23년(1374)에 우리나라 최초로 수군 창설 계획을 올려 전라도 안무사로 발탁되었으며, 우왕 3년(1377)에는 순천 도병마사가 되어 순천·낙안 등지에 침입한 왜군을 격퇴하였다. 우왕 14년(1388)에 이성계의 위화도회군에 종군하여 그 공로로 공양왕 2년(1390)에 2등공신에 봉해지면서 판개성부사로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바로가기
  • 전상의장군예장석묘 (全尙毅將軍禮葬石墓)이미지
    전상의장군예장석묘 (全尙毅將軍禮葬石墓) 조선 중기의 문신인 전상의(1575∼1627)의 장군의 묘소이다. 장군은 선조 36년(1603)에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을 첫 벼슬로 내외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인조 3년(1625)에는 구성부사로서 좌영장을 겸하였다. 광해군 9년(1617) 오윤겸과 함께 회답사(回答使)로 일본에 건너가 임진왜란 때 끌려간 동포 1500여 명을 귀국시키는 공을 세웠다. 또한 인조 5년(1627)에 후금이 인조의 친명정책을 구실삼아 3만 대군으로 침략하자 안주성 싸움에서 분전하였다. 그러나 구원병이 오지 바로가기
  • 충효동정려비각 (忠孝洞旌閭碑閣)이미지
    충효동정려비각 (忠孝洞旌閭碑閣)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김덕령(1567∼1596)과 그의 부인 흥양 이씨, 그의 형 김덕홍(1558∼1592), 그의 아우 김덕보(1571∼1596) 등 일가족의 충효와 절개를 기리기 위해 나라에서 마을 앞에 세운 비석과 비각이다. 김덕령은 그의 형이 고경명의 지휘 아래 참전한 금산전투에서 전사하자 상중(喪中)인데도 의병을 모집하여 왜군의 전라도 진출을 막기 위해 진해와 고성 등지에서 싸웠다. 그러나 이몽학의 반란에 연루되었다는 모함으로 혹독한 고문 끝에 20일만에 옥사하였다. 그 바로가기
  • 무진고성지 (武珍古城址)이미지
    무진고성지 (武珍古城址) 광주광역시 북구 무등산에 있는 성터로, 무등산의 북쪽 지맥인 장원봉을 중심으로 잣고개의 장대봉과 제4수원지 안쪽의 산 능선을 따라 타원형으로 만들어졌다. 성벽은 바닥에 5단 정도를 돌로 쌓아올리고, 그 위의 성벽을 잡석으로 채우는 방식이다. 성벽의 남북 길이는 1000m이고, 동서의 너비는 약 500m, 둘레는 3500m에 달하는 규모가 큰 성이다. 성안에서 ‘관(官)’, ‘국성(國城)’ 등의 글자를 새긴 기와조각들과 새, 귀신의 얼굴을 새긴 막새기와, 그리고 순청자, 상감청자 자기조각들이 바로가기
  • 금곡동제철유적 (金谷洞製鐵遺蹟)이미지
    금곡동제철유적 (金谷洞製鐵遺蹟)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인 김덕령 장군과 관련된 유적지로, 무기를 만들던 곳이다. 무등산 꼭대기에서 서북쪽으로 뻗은 능선이 비교적 완만한 경사지의 평탄한 곳에 자리하고 있으며, ‘주검동(鑄劍洞)’이라 불리우기도 한다. 이곳은 위아래 2단으로 돌을 쌓고, 제철 쓰레기를 처리하기 위한 급경사면을 만든 후 제철, 단조(緞造:광석에서 금속을 뽑아 두드려 만드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철기 생산에 필요한 기본과정과 시설을 배치해 놓았다. 제철로는 작은 판돌과 깬돌을 이용하여 직사각형으로 만든 후 그 바로가기
  • 광주북동천주교회 (광주북동천주교회)이미지
    광주북동천주교회 (광주북동천주교회) 이 교회는 전라남도 지역이 광주교구로 승격되던 1937년 광주성당의 4대 주임신부로 부임한 구신부(Rev. Thomas Quinlan)가 계획을 세워서 지은 것이다. 구신부는 교회를 신축하기 위해서 성당건축에 경험이 많은 중국인 가요셉에게 설계와 공사를 맡겨서 1937년 10월에 착공하여 이듬해 6월에 낙성하였다. 건물의 평면은 가늘고 긴 사각형으로 정면에 종탑을 배치하고 좌측면에만 제의실과 고해실을 배치하였다. 외벽은 고막이돌을 놓고 붉은색 벽돌을 쌓았으며, 종탑과 측면에 있는 창틀과 문 바로가기
  • 광주학생운동발상지 (광주학생운동발상지)이미지
    광주학생운동발상지 (광주학생운동발상지)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주도하였던 학생들이 다니던 학교의 교사부지의 일부를 문화재로 지정한 것이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은 우발적인 한·일 학생간의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축적된 민족의식과 독립의지의 적극적인 표출이며, 일제의 탄압과 착취, 차별교육에 대항한 민족운동이다. 광주에서 항일 시위를 전개한 후 전국의 194개 학교 54,000여명의 학생들이 참가하여 일제를 놀라게 한 사건이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의 태동은 광주공립고등보통하교, 광주공립농업학교,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 전라남도공립사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