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문화유산

전체 9건, 현재 페이지 1/1

  • 십신사지석불 (十信寺址石佛)이미지
    십신사지석불 (十信寺址石佛) 대황사 절터에서 발견되어 구 광주농고터로 옮겼다가 다시 광주시립박물관으로 옮겨 보관하고 있다. 8각의 돌기둥 표면에 불상, 대좌(臺座) 등을 간략히 표현하였다. 민머리에는 구멍이 있어 보관(寶冠)을 썼던 것으로 보이며, 타원형의 평판적인 얼굴에서는 토속적인 수호신의 표정이 느껴진다. 돌기둥의 형태를 변형하지 않고 얼굴 너비와 거의 같은 너비로 어깨를 만들어 신체는 위축된 모습을 보여준다. 오른손은 가슴쪽으로 들어 보주(寶珠)같은 것을 쥐고 있으며, 왼손은 배에 대어 옷자락을 잡고 있는데 얼 바로가기
  • 광주십신사지석비 (光州十信寺址石碑)이미지
    광주십신사지석비 (光州十信寺址石碑) 십신사터에 남아 있던 비로, 1990년 10월 11일 광주시립박물관으로 옮겨 세웠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우고 지붕돌을 얹은 형태이다. 거북받침은 거의 사각형에 가까우며 등에는 벌집모양의 육각형 안에 ‘王’자를 새겨 놓았다. 길쭉한 비몸 위에는 목조 건축을 모방한 지붕돌이 약간 파손된 채 놓여 있다. 비몸에는 앞면 윗부분에 ‘범자(梵字:불교문자)’자를 새긴 후 그 아래에 세로로 비문을 새겼는데, 이 때문에 ‘범자비’라고 부르기도 한다. 비문에는 질병을 막고 장수를 기원하는 내용이 바로가기
  • 원효사동부도 (元曉寺東浮屠)이미지
    원효사동부도 (元曉寺東浮屠) 부도는 승려의 무덤을 상징하여 그 유골이나 사리를 모시는 곳이다. 이 부도는 원효사 대웅전에서 왼쪽으로 약 150m 떨어진 숲속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 절에 전하고 있는 몇 안되는 유물 가운데 하나이다. 네모난 바닥돌 위에 3개의 받침돌로 이루어진 기단(基壇)을 마련한 후, 탑신(塔身)을 올려 놓은 모습으로, 바닥돌과 기단의 일부를 제외한 각 부분이 8각을 이루고 있다. 기단은 아래받침돌 윗면에 연꽃조각을 두르고, 옆면의 네 모서리에 숫사자와 암사자를 교대로 배치하였다. 가운데받침돌은 바로가기
  • 원효사출토유물 (元曉寺出土遺物)이미지
    원효사출토유물 (元曉寺出土遺物) 신라 문무왕(재위 661∼681) 때 원효가 머물었다는 광주 무등산에 있는 원효사 대웅전을 신축하던 중 발견된 유물들이다. 수 백점이 발굴되었으나 그 중 금동·청동불상 12점, 소조불상 18점, 청동거울 2점이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근래에 8∼9세기의 해무리굽 청자 조각이 발견되어, 이 절의 창건연대를 높이는 단서가 되었으며, 조선시대 분청사기의 파편들이 다수 발견되어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금동·청동불상들은 대부분 부식상태가 심하여, 다른 불상이 가지고 있는 몸 뒤의 광채 즉, 광배와 바로가기
  • 원효사소장만수사범종 (元曉寺所藏萬壽寺梵鍾)이미지
    원효사소장만수사범종 (元曉寺所藏萬壽寺梵鍾)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총 높이 86㎝, 몸체 높이 66㎝, 입 지름 63㎝인 범종이다. 종을 매다는 부분인 용뉴는 각각 여의주을 물고 있는 2마리의 용으로 장식하였는데, 용머리 위에도 불꽃에 휩싸인 1개의 여의주을 장식하였다. 용머리 장식이나 발의 조각기법은 약간 경직되어 있다. 음통을 대신하여 종의 윗부분에 2㎝ 정도의 구멍을 종의 윗부분에 뚫었다. 종 위쪽 띠에는 범자 문양 띠를 둘렀으며, 띠 아래에는 사각형의 유곽과 4구의 보살상이 동일선상에 번갈아 배치되었다. 유곽과 보살상 사이에 바로가기
  • 눌재집목판각 (訥齋集木版刻)이미지
    눌재집목판각 (訥齋集木版刻) 조선 전기의 학자이자 문인인 눌재 박상(朴祥,1474∼1530) 선생의 시문집의 판각이다. 선생은 연산군 7년(1501) 정시을과에 급제하여 교서관 정자로 관직에 나아간 후 여러 관직을 거쳐 중종 25년(1529) 나주목사를 역임하였다. 학문으로 배운 바를 충실히 실천하는데 앞장섰던 인물로, 정사에 임하는 자세가 공정하고 청렴하였다. 선생이 남긴 글은 시(時), 부(賦), 서(序), 기(記), 발(跋), 제문(祭文), 문(文)으로 나누어지는데, 즉흥적이고 직설적인 면보다 내면적 여과를 바로가기
  • 사암집목판각 (思庵集木版刻)이미지
    사암집목판각 (思庵集木版刻) 이 책은 조선 중기의 문신인 사암 박순(朴淳,1523-1589)의 문집을 목판본으로 새긴 것으로, 인조 26년(1648)에 박순의 자손들에 의하여 7권 3책으로 편집, 간행되었다. 그 후 철종 8년(1857) 다시 중간본이 발행되었다. 박순은 문신이자 학자로서, 명종 8년(1553)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예문관 전적을 시작으로 영의정을 거쳐 선조 20년(1587)까지 35년간 조정에서 일하였다. 이 책의 권1∼3에는 시 583수, 권4에 계(啓) 2편, 서 2편, 잡서 4편, 비명 7편 바로가기
  • 전라남도도청회의실신축설계도 (全羅南道道廳會議室新築設計圖)이미지
    전라남도도청회의실신축설계도 (全羅南道道廳會議室新築設計圖) 이 도면은 1930년경 한국인 건축가 김순하가 설계한 평면도, 단면도, 입면도 등으로 현대건축 도면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것이다. 일제시대에 한국인 건축가가 설계한 그들의 작품이 실현된 것은 1920년대 후반부터였다. 이 도면은 일제시대 지방 최초의 설계도면일 뿐만 아니라 한국의 전통건축을 조영할 때 우리 선조들이 설계도면을 사용했는지 확실하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의미가 대단히 큰 작품이라 평가된다. 바로가기
  • 이신의종가소장고문서 (李愼儀宗家所藏古文書)이미지
    이신의종가소장고문서 (李愼儀宗家所藏古文書) 이 문서는 조선 중기의 문신인 이신의(1551∼1627) 선생의 후손인 운부의 직계 후손이 작성하여 발급하거나 발급받아 이신의 선생의 종가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문서이다. 이신의는 일찍 부모를 여의고 형에게서 학문을 배우다 1582년 그 학행이 높아 천거되어 벼슬길에 올랐다. 임진왜란이 터지자 고향에서 300여명을 이끌고 왜적과 싸워 공을 세웠고, 그 공으로 여러 차례 승진되었다. 1617년에는 광해군의 폭정에 항거하다가 이항복, 정홍익 등이 유배되자 이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려 그도 유배길에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