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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코스

경렬사

  • 경렬사1

기본정보

  • 주 소 : 광주광역시 북구 석곡월산길 119 (망월동)
  • 시 설 : 사당, 장군묘역
경렬사는 고려말의 용장 정지 장군(鄭地 將軍)을 모신 곳으로 왜구 격퇴에 큰 공을 세운 정지(1347-1391)장군을 배향하고 있는 사우로 제4수원지 아래쪽에 펼쳐지는 협곡에 자리잡고 있는 분토마을 뒷산에 위치하고 있다.
경렬사는 1644년(인조 22년)에는 지금의 동구 동명동 74번지에 있었는데 1868년(고종 5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훼철되었고 그곳에 유허비만 세워졌었다. 지금의 경렬사는 ‘정지 장군 유적보존회’에서 1978년 복원을 시작하여 1981년에 완공했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철골기와로 된 팔작지붕이다.
현종 10년(1644)에 지금의 동명동에 경렬사를 세우고 배향하였으나 1871년 3월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헐리게 되었다.
정지 장군은 고려말의 무관으로 초명은 준제(准堤), 시호는 경렬(景烈)이며 나주에서 태어났다. 공민왕 14년(1365) 사마시에 장원하고 이듬해에 문과에 급제한 후 벼슬에 나아갔다.
공민왕 23년(1374) 중랑장이 되어 수군에 대한 헌책을 올려 수군을 창설케 하였으며, 우왕 3년(1377)에 순천도병마사가 되어 순천, 낙안 등지를 침범한 왜적 18급을 목베고 3명을 생포하는 전과를 올렸다. 이듬해 영광.광주.동복 등에 다시 왜적이 나타나자 뒤를 쫓아 옥과에서 적을 불태워 죽이고 말 100필을 얻는 등 큰 공을 세웠다. 전라도순문사, 해도도원수, 영광·전라·경상·강능도 도지휘처치사, 문하평리 등을 지내면서 왜구를 소탕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정지 장군은 이성계 일파가 고려를 없애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 하자, 고려 왕실을 붙들다가 유배되었고 뒤에 광주에 은거하여 45살의 나이로 한을 품은 채 죽었다.
1980년 국비와 지방비를 투자 묘소 앞에 사당과 경앙문, 충의문, 관리사무소 등과 주차장을 비롯한 편의 시설을 갖추었다. 예장석묘는 광주시 기념물 제 2호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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