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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코스

드라이브코스, 연인, 가족들이 함께하는 드라이브 코스, 우리구의 역사와 문화를 알면서 자연과 더불어 테미를 즐길 수 있는 곳입니다. 국립5.18민주묘지 광주호(호수생태원) 충효동왕버들 충효동도요지 원효사 청풍쉼터  무진고성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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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립5 ·18민주묘지이미지
    국립5 ·18민주묘지 호남고속도로를 동광주 톨게이트에서 담양 쪽으로 4.5킬로미터쯤 가다 보면 왼쪽으로 무등산이 바라보이는 아늑한 곳에 터를 잡고 있는 국립5·18민주묘지를 만나 볼 수 있다. 묘역 입구에 들어서면 마치 두 손으로 타원형 물체를 맞잡고 있는 형상의 추모탑이 우뚝 솟아 있어 경건함을 더해준다. 그 곳이 의향이자 민주의 도시, 그리고 민주성지라고 부르는 광주의 대표적인 상징인 국립 5·18민주 묘역이다. 5 만 여평에 조성된 국립5·18민주묘역에 들어서면 먼저 참배객들이 방명록에 서명하고 경건하게 옷
  • 광주호 호수생태원이미지
    광주호 호수생태원 왕버들나무 충장공 김덕령의 출생지이고 곁에 있는 환벽당이 1500년대에 사촌(沙村) 김윤제(金允悌)가 지었다는 것을 보면 그 이후에 왕버들나무가 심어졌던 것으로 수령은 지금부터 약 400년 전으로 보인다. 왕버들나무는 버들과에 딸린 갈잎 큰키나무이며, 학명은 Salix glandulosa var. glabra이다. 암수 나무가 딴 그루를 이루며 4월에 꽃이 피고 열매는 삭과( 果)로서 5월에 익는다. 우리 나라 경기도 이남 지역과 일본 중부 이
  • 충효동 왕버들과 호수생태원이미지
    충효동 왕버들과 호수생태원 충효동 왕버들 1500년대 후기에 심어졌으며 원래 일송 일매 오류(一松 一梅 五柳)라 하여 마을을 상징하던 소나무 한 그루, 매화 한 그루, 왕버들 다섯 그루가 있었으나, 지금은 왕버들 세 그루만 남아있다.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16호였으나, 2012년 10월 5일 천연기념물로 승격되었다. 수령(430년)이나 규모면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타 지역 왕버들과 비교했을 때 우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수형 및 수세 또한 양호한 편으로 생물학적 가치도 크다. 가장 큰 나무의
  • 충효동요지이미지
    충효동요지 도요지는 무등산 북쪽 계곡에 넓게 펼쳐져 있는 가마터로 충장사에서 광주호로 가는 갈림길의 금곡마을 일원에 분포하고 있다. 금곡마을은 구릉 한 쪽을 따라 형성되어 있고, 그 맞은편 구릉의 경사면을 따라 대규모의 가마터가 남아있다. 좀더 정확한 가마터의 분포는 지암재를 중심으로 하는 곳과 풍암정 입구, 그 서쪽과 동북쪽 등이다. 이 도요지는 규모나 질 면에서 으뜸이다. 이곳은 1963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발굴 조사를 하였다. 발굴 조사 결과 가마의 퇴적층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을 뿐 가마터는 찾지
  • 원효사이미지
    원효사 무등산 북쪽 기슭 원효봉 아래 위치하고 있다. 송광사의 말사이며,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이라고 전해 온다. 대웅전 맞은편 누각인 회암루에 오르면 가까이는 노송과 기암괴석의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는 의상봉, 의상봉의 오른쪽에 우뚝 솟은 윤필봉, 멀리 정상인 천왕봉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와 장관을 이룬다. 봄철에 누각에 앉아 있노라면 희귀한 암석과 연초록 나뭇잎, 가을철에는 불타는 단풍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동양화를 보고 있는 듯하다. 무등산의 아름다운 풍광에 흠뻑 빠질 수 있어 휴식을 취
  • 청풍쉼터이미지
    청풍쉼터 청풍쉼터는 잔디밭, 체육시설, 놀이터 등을 갖추고 있어 유아들의 소풍장소로 애용되며 여름철에는 한보따리씩 싸 들고 저녁을 먹는 가족들의 행렬이 줄을 잇는 곳이다. 이곳에는 평생을 방랑하며 가는 곳마다 풍자적인 시를 남긴 불우시인 김삿갓(金炳淵)의 시비가 있다. 또 왼편으로 가면 시가문화권이 있으며 오른편으로 가면 충민사, 충장사를 거쳐 무등산장으로 오르는 길이 나온다.
  • 무진고성지 (武珍古城址)이미지
    무진고성지 (武珍古城址) 광주광역시 북구 무등산에 있는 성터로, 무등산의 북쪽 지맥인 장원봉을 중심으로 잣고개의 장대봉과 제4수원지 안쪽의 산 능선을 따라 타원형으로 만들어졌다. 성벽은 바닥에 5단 정도를 돌로 쌓아올리고, 그 위의 성벽을 잡석으로 채우는 방식이다. 성벽의 남북 길이는 1000m이고, 동서의 너비는 약 500m, 둘레는 3500m에 달하는 규모가 큰 성이다. 성안에서 ‘관(官)’, ‘국성(國城)’ 등의 글자를 새긴 기와조각들과 새, 귀신의 얼굴을 새긴 막새기와, 그리고 순청자, 상감청자 자기조각들이